[논평]

코로나19 대유행 속의 세계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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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자연의 반격’인 코로나19가 공평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인간으로서 누구라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19와 맞서는 단일한 인간이 아니라 분할되고 찢겨진 인간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분할되고 찢겨진 인간들은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코로나19로 어떤 것이 더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누적되는 진보’라는 관념에 대한 회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여성과 소수자의 삶과 지위는 이런 회의가 근거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뼈아픈 현실이다. 경제 참여 및 기회, 교육 성취도, 건강 및 생존, 정치 권한 등 삶의 모든 면에서 여성과 소수자는 평등하지 못하다. 게다가 ‘강남역 사건’과 ‘n번방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의 신체, 더 정확히는 여성의 인격 자체에 대한 폭력은 끔찍할 정도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일자리를 잃고, 또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돌봄의 부담을 고스란히 지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헌신을 요구받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혐오를 당하고 있다.

이렇게 기존 질서의 유지와 온존 이외의 방식을 전혀 생각할 줄도, 실행할 줄도 모르면서 포스트코로나와 뉴노멀을 말하는 것에서 위선 이외에 그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

하지만 다른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습관처럼 내뱉은 “코로나와의 전쟁”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일말의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이 가리키는 방향을 엿본다. 이때 전쟁은 총력전일 것이고, 총력전은 모든 이의 참여와 연대를 요구하며, 그 조건은 모든 이의 동등성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아니 전쟁을 제대로 끝내기 위해서 전쟁 중에 이미 새로운 사회 협약이 제출될 것이다.

모두를 동등한 존재로 본다는 것은 모두가 존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이 마땅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이런 가치가 있음을 서로에게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해 기본적인 물질적 조건과 정치적 목소리가 필요하다. 113년 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며, 그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가 이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우리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모두가 존엄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보장을 하고, 더 나아가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기본소득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이자 토대이다. 이 위에 우리가 어떤 삶의 원칙과 지향을 담아낼 것인가는 남은 문제이다. 하지만 수십 년의 신자유주의 시대와 코로나19 대유행 1년을 지나면서 분명한 것은 돌봄과 협력과 연대 없이는 모든 존재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만약 진보라는 게 있었다면 단속적으로나마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차곡차곡 기념해서 이제 113년이 된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1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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