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본소득이라는 빵과 장미를: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를 맞이하며
김수연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1908년 2월 28일 미국 뉴욕, 1만5천여 명의 여성노동자가 한자리에 모여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과 여성의 투표권 쟁취를 외치며 도시를 가로질렀다. 가장 지저분하고 궂은일을 하루 12~14시간 동안 하면서도 임금은 남성의 절반뿐이었고, 한 명의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사회에 발언하고 행동하는 기본권인 투표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요구한 “빵과 장미”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생존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한 것임을 상징한다. 21세기 참정권을 비롯한 형식적 시민권을 부여받은 여성에게,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촉발되어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은 여성이 성적 대상화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 동등하게 존중받고자 ‘장미’를 흔드는 외침에 다름 아니었다.
먼저 ‘빵’으로 상징되는 여성의 빈곤 문제에서 성별 불평등은 확연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정노동에 더 많이 노출된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노동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비정규직 비율(26.4%)보다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41.0%)이 훨씬 높았다. 불안정 노동의 형태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시간제 일자리를 비롯하여, 노동권과 사회적 보호에서 제약이 높은 특수고용형태에 더 많이 종사한다. 일자리 격차는 연금 격차로 이어져 여성 노인의 빈곤율을 악화시키고, 결혼 및 출산으로 청년기 여성이 맞는 경력 단절은 여성 노인 빈곤의 출발점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본소득은 오늘날 임금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여성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성 때문에 여성은 직장 내 갑질을 비롯한 성폭력에 대항하기 더욱 어렵다. 2018 ‘젠더갑질 실태조사팀’은 2018년 미투운동이 직장 내 성평등에도 직·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서도, 노동자들이 겪는 직장 내 “젠더 갑질”은 무기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무호봉·승진트랙없음·저임금 등의 노동조건, 여성의 일로 구분된 직종에 종사하면서 겪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기본소득은 고용과 소득의 연결고리를 끊어냄으로써, 성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선사함으로써, 갑질에 대항하고 협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경제적 계급 및 사회문화적 지위에 대한 젠더불평등에 대한 정부 정책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더구나 여성에 대한 구시대적인 성역할은 저출산 고령화를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 ‘위기’로 설정하고 제시되는 결혼 및 출산 장려 정책 전반에 깔려 있다. 반면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고정된 성역할과 관계성을 뒤흔든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여성이 남성과 갖는 법적 관계 여부, (남성과의) 혼인 관계 안에서의 출산 여부, 남성 또는 여성과의 동거 여부 등을 가리지 않고 지급되기 때문에 비혼가구 및 공동체 실험과 같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장미’로 상징되는 더 많은 자유와 더 큰 존엄성은 기혼/중산층/남성 중심적 가치질서를 기반으로 여성에게 강제되는 남성과의 관계성에 균열이 일어날 때 가능하다.
이렇게 폭로와 규탄을 넘어서, 여성이 2등 시민이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 바로 설 수 있는 지속가능한 조건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가 기본소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은 의존과 자립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끔 한다. 실제로 미국 연방 정부가 1960년대 이래 싱글맘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흑인이라는 통념에 따라 싱글맘을 줄이기 위해 미혼여성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여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금노동체제에서 차별과 배제의 피해자인 여성에게 낙인 효과는 더욱 가혹하게 작동한다. 여성이 ‘의존자’라는 낙인의 굴레를 벗어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관습을 깨고, 여성을 삶을 함께 꾸려가는 동료 시민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한 기본소득이 절실히 요청되는 지점이다. 나아가 오랜 동안 자본주의 국가가 죄악시해 왔던 ‘의존’의 재발견과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돌봄’의 윤리는 미래의 해방을 열어젖힐 것이다.
작성일: 2019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