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상 이사장 인터뷰

인터뷰어: 한인정 뉴스레터 공동편집위원장

Q.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2021년에 진행한 과업에 대한 소개와 전반적인 평가 부탁드려요.

사회적·생태적 위기에 처한 지금, 2021년 대선은 한국사회의 변곡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방향설정이 중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행동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입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변화의 비전이자 방법으로서 기본소득을 외쳤습니다. 기본소득이야말로, 사회적·생태적 전환을 일궈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서도 정당하지만 말입니다. 이를 위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제대로 된 기본소득 모델’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약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기본소득 로드맵(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를 발표한 것입니다. 이는 수십 차례에 걸쳐 진행된 기본소득 쟁점토론회를 기반으로 십여 명의 필진이 머리를 맞댄 작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로드맵은 ‘제대로 된 기본소득’으로 나가기 위한 기준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용한 모델뿐 아니라 정당성과 효과까지 담아냈습니다. 즉, 변곡점에 서서 어떤 미래를 향해 갈 것인가의 방법과 그 상(想)을 그려낸 것입니다.

Q.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정치적 이슈로 부각함은 물론, 정책적인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하시나요?

한국에서 처음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게 작년 1월이죠. 그리고 3월에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고, 재난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거예요. 그때 우리 앞에 닥친 고민이 이거였어요. ‘사람이 살려면, 활동을 축소해야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분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처음으로 ‘더 열심히, 더 열심히’를 외치며 성장을 추구했던 사회가 ‘멈춰야 산다’는 논리를 마주한 거죠. Fed 부의장이 “계획적 경기 후퇴”라는 말을 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러면 지금까지 성장의 논리 속에서 끊임없이 지속된 경제 활동을 멈춰야 하는데, 문제는 사람이죠. 사람은 앞서 말한 경제 활동처럼 잠시 멈춰놓거나, 냉동시킬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때 상대적으로 복지국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곳은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견뎌내는 전략을 택했죠. 이에 반해 소득보장분야가 취약한 한국 같은 경우엔 재난지원금 논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 재난이 누구에게 닥쳤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여행업이 직격탄을 맞고, 고소득층이라고 불리는 조종사가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등.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경험으로 해석할 수 없는 사례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겁니다. 계급, 계층,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바이러스, 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위기에 기본소득 방식의 재난지원금이 시도됐고, 그러면서 기본소득 논의가 더 부각된 것 같아요.

이처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로 회귀하려는 시도가 나오죠. 대표적인 게 선별적 보상논의로 바뀌어가는 겁니다. 손실을 많이 본 사람에게 몰아서 줘야 한다는 이야기인거죠. 하지만 기본소득론자들은 이 기회에 필요성뿐 아니라 코로나 팬더믹이라는 기회를 통해 변화된 세상을 만들자는 물꼬를 트려했는데, 너무 빨리 회귀하려는 힘 또한 강하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이유로 올해 들어선 기본소득 논의가 약화되는 측면까지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한국은 좀 더 복잡하긴 합니다. ‘전략적 행위자’로서 대선후보가 대표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내세우고 있으니까요. 이건 매우 우연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만약 경선에서 이 후보가 탈락했다면 기본소득 논의는 확 뒤로 갔겠죠. 과거 수준의 논의로 말이죠. 이런 걸 생각하면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지지 기반이 아직 넓고 단단하고 말할 수는 없겠죠. 만약 대통령 당선 이후 어떤 기본소득이건 시작되더라도, 네트워크가 지향하는 것에 비하면 현실적 굴절이 있을 거라고 보여요. 그래서 그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확대·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는 게 과제입니다.

Q. 그럼 올해 과제는 기본소득의 확대·발전에 방점이 찍히겠네요.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신가요?

3월의 결과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만약 어떤 기본소득이든 간에 우선 실시가 된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고 봐요. 공공서비스, 공공부조 등 기존제도와 어울려야 하고, 또 사회적·생태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실현의 계기 혹은 ‘고리’가 중요하다고 봐요. 정치적 전략으로 보면 공유부로서 탄소, 토지 등을 기반으로 한 탄소세, 국토보유세 등이 실시되어야 하는 거죠. 아마 이 제도는 기본소득의 도선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본선이 들어가기 전에 경로를 열어주도록요. 물론 다른 주택정책, 생태정책과 연합해야 시너지 효과가 나므로 그런 요소들과의 결합도 잘 고민해야 하겠죠.

또 중요한 과제는 지지기반의 확장입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야 기본소득이 그 자체로 실현되어야 할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의 속에서 아직 만나지 않는 ‘존재’들이 많다고 봐요. 그 존재들과 연합과 동맹을 형성하고, 그 정치, 사회적 압력을 강화해가는 것이 과제겠죠.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만들려는 세력들의 힘이 더 깊고, 견고하게 맺어질 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으니까요.

Q. 조금 더 세부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어떤 구체적 과제가 있을까요?

정기총회에서 말씀드리겠지만, 결국 힘을 모으기 위해선 설득과 동의라는 과정이 필수적 단계예요. 기본소득이 여전히 생소한 아이디어인 만큼 우리의 정당성, 합리성을 공론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겠죠. 우선 정당성의 영역에선 공유부라는 것을 현실 속에서 해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철학적 수준의 정당화를 넘어서, 현실 속에 존재하는 공유부들을 찾아나가고 인식시켜나갈 때 우린 공유자로서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좀 더 세부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우선 현재 사적소유 안에 들어 있는 공유부들을 찾아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껏 모두 ‘개인’에게 돌아갔던 부 속에서 공유적 성격을 찾아내는 작업이겠죠. 예를 들어 국토보유세를 실시과정에서 부동산 안정을 위해 국토보유세를 실시한다는 필요의 영역을 넘어내야겠죠. 토지가 모두의 것이며, 지가상승이 사회적인 영향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것들이 전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밝혀질 때 국토보유세에 대한 지지는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또 한편으론 국토보유세, 탄소세 등이 실시되었을 때 사람들의 경험을 포착하고 저술해내는 작업이 중요해요. 그 과정은 향후 기본소득 확장에 필수적 과제가 될 거예요. 실제로 경기도 청년배당 등에 관한 연구들이 축적되었을 때 하나의 담론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신설되는 정책에 대한 경험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할 거고, 그건 연구교육집단으로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중요한 과제가 될 거라고 봅니다.

Q.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운동적 성격도 가지고 있잖아요. 어떤 활동들을 준비 중이신가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어떤 식의 운동을 하는 것이 적합할지에 관해선 고민 중이에요. 정당이라면 전국순회하면서 회원들도 다 만나고,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물론 네트워크도 초기엔 길거리 캠페인도 하고 했었어요. 다만, 지금으로선 내적인 기반을 다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작은 시민단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도 직결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우리가 가진 인적, 물적 기반보다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요. 요즘에는 그런 고민이 잦아요. 할 일이 참 많은데, 할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확장시켜나가려고 해요.

특히 코로나가 어느 정도 종식되면, 회원들을 찾아서 가보려고 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생각, 그리고 회원분의 생각을 겹쳐가며 생각하고 더욱더 결속력을 높이고, 기본소득의 미래를 보다 구체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셨나요?) 네트워크에 가입하신 분들의 동기를 보면 참 다양해요. 물론 회비만 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도 계시겠지만(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인 지지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기본소득 계간지에 실리는 ‘기본소득과 나’라는 코너를 흥미롭게 보곤 해요. 각자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기본소득이 꽃을 피웠는지 알 수 있거든요.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어떤 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운’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개인적 가치관, 힘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 역할로서 기본소득을 지지하시는 것 같고요.

Q. 그래요. 그럼 이사장님이 회원들을 찾아가는 그날이 코로나 종식의 날이겠네요. 기대됩니다. 인터뷰 마무리 시간이에요. 회원들에게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선 상투적인 말이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한 해 되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또, 응원을 보내주시는 만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할 테니 기대 부탁드리고요. 그런 의미에서 소통하는 네트워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고 있으니까요. 기본소득만이, 기본소득밖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새로운 상상‘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거죠. 그래서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미래지향적 아젠다를 만들어 낼 예정이에요. 다양한 운동과의 연합가능성을 꿈꾸는 거죠. 장애운동, 페미니즘운동 등에서 기본소득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러다 보면 교집합을 찾고, 더 건설적인 토의가 가능하다고 봐요.

#. 안효상: 어렸을 때 별명은 수도꼭지였단다. 상을 받아도 울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나.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 과학자의 꿈을 가진 적도 있지만, 그건 냉전시대 키즈로서 가졌던 꿈이었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사실 좋아했던 건 ‘이야기’였다. 역사, 지리 등 시간 속에 갇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게 재미있었다. 그 깊이 있는 고민들을 탐구하는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적도 있었지만, 어렵다는 생각에 전공은 역사로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생활, 세월이 엄혹했다. 그는 어쩌다보니(?) 선배를 따라, 운동권 동아리에 가입을 했고 관련 서적을 접하게 된다. (그때는 다 그랬더라나;) 그렇게 친구를 따라 운동권으로 자연스럽게 입문했고 출판사 대표, 사회당 대표, 진보신당 공동대표, 지역선거에 출마를 하기까지 한다. 기본소득 개념 역시 오랜 친구였던 금민(현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선생이 독일유학 후 사회당 대표로 2007년 대선에 출마할 때 처음 알게 됐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보다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아 동의하게 됐다. 옳은 개념에, 꾸준히 앉아서 성실하게 있다 보니 어느새 이사장직까지 오게 됐다는 그.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가진 데 비하면, 정말 많은 활동을 한 것 같다는 질문에 그건 아마 무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어지면 꾸준히 해내는 성격 탓인 것 같다고 답한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전부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다 말한다.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존재로서 성실히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옳지 않은 것에 옳지 않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한 가지라도 바꿔나가려는 그런 움직임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만약 기본소득이 충분한 수준까지 주어지는 사회가 된다면, 뭘 하고 싶겠냐는 말에.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별명이 수도꼭지였던 소년에게 이 보다 딱 맞는 답변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