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찬휘 회원(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이 <민중의 소리>(2019년 2월 15일자)에 기고한 글이다.

[기고]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과연 실패했는가?

김찬휘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2017~18년 2년간 실시한 핀란드 중앙당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예비보고서가 2월 8일 공개되었다. 이것이 ‘예비’ 보고서인 이유는 현재 공개 가능한 정보, 즉 등록된 데이터와 전화 설문조사 연구 결과만을 우선 보고한 것이기 때문이며, 그나마 등록된 데이터는 실험 1년 차인 2017년의 데이터만을 이용해서 분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즉 실험 2년차의 등록데이터 분석을 포함한 실험 최종보고서는 2020년에 공개된다.

이 ‘예비’ 보고서가 공개되자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실패”를 환영하는 기사가 즉각 올라왔다. “月 560유로 기본소득, 실업 해결에 효과 없어…핀란드, 실험 실패 최종 결론”(한국경제, 기사 보기). “실업해결 역부족, 기본소득 실패 인정한 핀란드”(서울경제, 기사 보기). “기본소득제는 현대판 ‘빵과 서커스’에 불과할까?…핀란드 실험 실패”(아시아경제, 기사 보기). “기본소득, 삶의 질 높이지만 고용증대 효과는 거의 없어”(동아일보, 기사 보기).

노동시장 참여를 확인하려 했던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과연 이 실험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그것은 실패인가?
먼저 실험의 설계부터 살펴보자. 실험의 설계는 핀란드 사회보험국인 Kela가 맡았는데,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25~58세 사이의 개인 2,000명을 무작위 추출하여 매월 560유로(약 71만원)씩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금액을 주는 동안 다른 소득이 생기더라도 감액 없이 그대로 지급하며, 기존에 받던 실업급여액이 560유로보다 많았다면 그 차액을 더 지급한다. 그리고 기본소득 지급액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설계 내용만 보더라도 이것이 기존의 실업급여와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다. 실업급여를 수령하려면 “적극적인 재취업활동을 한 사실을 확인”해야 하지만,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으로 지급한다. 또한 실업급여는 다른 소득이 생기면 감액/중단되지만 기본소득은 그렇지 않다. 일을 더 해봤자 깎이는 실업급여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실업급여는 ‘노동유인’을 제거하고 ‘실업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래서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한 제1목표는 기본소득이 실업급여와 달리 적극적인 노동시장 참여를 유도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있었다.

노동공급 효과에 관한 실험 1년차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분석은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을 ‘실험군’으로, 예전처럼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을 ‘대조군’으로 하여 비교되었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대조군에 비해 연간 평균 0.39일 고용일이 늘었다.(실험군 49.64일, 대조군은 49.25일) 자영업 소득 비율은 기본소득 수령자가 대조군보다 대략 1퍼센트 포인트 높았지만(43.70%와 42.85%), 자영업 소득 액수는 기본소득 수령자가 대조군보다 평균 21유로 적었다(4,230유로와 4,251유로). 이 정도의 변화는 유의미한 결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이 대조군에 비해 더 나아지지도 더 악화되지도 않았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게 된 것이며, 한국 보수언론들이 “실패”로 대서특필하게 된 것이다.

실업을 개인의 나태와 추가 소득 문제로 바라본 핀란드 정부

하지만 이것은 핀란드 정부의 실험 의도가 애초에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에 불과하다. 실업을 기본적으로 실업자 개인의 나태와 금전적 유인의 문제로 보고 있다. 즉 시장에서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하면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실업은 ‘기술적 실업’이라 불리는 구조적인 것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노동 수요의 엄청난 감소를 낳았다. 생계가 해결되고 품위 있는 일자리는 점점 더 귀하게 되고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만이 시장에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돈 좀 더 줄테니 일을 하라는 것은 결국 비천한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 된다.

또한 평생 지급되는 기본소득도 아니고 2년간의 실험임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그것도 1년차의 조사 상황에서, 갑작스런 취업과 생활의 전환을 결심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역으로 지금까지 기본소득이 노동의욕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있었기에, “나아지지도 악화되지도” 않은 실험결과는 오히려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기에 충분함이 있다. 또한 취업자를 제외한 실업자만의 실험이라는 근본적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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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목할 부분: 삶의 불안 줄이고 웰빙 증진시켰다

이번 예비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실험 종료 직전에 실시한 전화설문조사 결과이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대조군보다 더 행복(well-being)해졌다고 느꼈다. 기본소득 수령자의 55%와 대조군의 46%가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거나 매우 좋다고 느꼈고, 기본소득 수령자의 17%와 대조군의 25%가 꽤 높은, 혹은 아주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또한 기본소득 수령자는 집중력이 높아지고 자신의 미래와 사회적 이슈에 영향을 미치는 자신의 능력, 자신의 취업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 게다가, 기본소득 수령 과정에서 실업급여보다 훨씬 관료주의적 폐해를 덜 겪었고, 기본소득이 일자리 제안을 수용하거나 사업의 시작을 용이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조군보다 많았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세계 최초의 국가단위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또한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무작위 표본추출에 의한 의무적 참여라는 점에서, 과거의 실험보다 좀 더 신뢰할 만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짧은 실험에서도 기본소득이 일정한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고, 삶의 불안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여서 웰빙을 증진시킨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어떤 사회정책도 그 목표는 결국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 말이다.

마지막으로 실험은 실험일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떤 사람도 실험 상황에서는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 실험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여기서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의 다비드 카사사스 부대표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독재는 실험 해 보고 했는가? 신자유주의는 실험 해 보고 했는가? 보통선거는 실험 해 보고 했는가?”

도처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 ‘실험’에는, 인간의 삶을 실험실의 쥐처럼 관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가로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