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과 복지동산

작성자
retelf
작성일
2016-09-03 16:21
조회
498
에덴동산은 노동이 없는 동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노동을 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곳은 그저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낙원으로서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과일 중 선악과만 빼고 따먹기만 하면 되는 그런 곳입니다. 반면 복지동산은 노동동산입니다. 이곳도 그런대로 잘살기는 하는 곳입니다. 매달 연금도 나오고 의료혜택이라던가 치안 같은 것도 제법 잘 갖추어져 잇습니다. 평일에 하루 8시간 노동을 하면 불금에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를 화끈하게 즐길 수도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월요일에는 노동 일터로 달려가야 합니다. 반면 에덴동산에서는 월요일 아침에 단잠을 설칠 일이 없습니다.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의 향기를 맡으며 아침 햇살을 즐길 뿐입니다.

기본소득은 에덴동산에 속한 제도입니다. 노동부정제도입니다. 따라서 복지동산에서 이 제도를 실시하면 안됩니다. 동산이 무너져 버립니다.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게 됩니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이 텅비게 됩니다. 실업률은 하늘 높이 치솟게 될 것이고 엄청난 혼란 속에 복지동산 경제는 붕괴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혼란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기본 미만 수준으로 지급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복지동산에 알맞은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본미달소득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일터로 끌려 나오게 됩니다. 월요일 아침에 찡그린 얼굴로 지하철을 향해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복지동산은 노동긍정사회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본미달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곰곰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정책입니다. 사람들을 일터로 끌어내면서 굳이 기본미달소득을 획일적으로 지급 내지 보장해 줄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도로서는 전통복지제도 내지 선별적 복지제도가 가성비 면에서 훨씬 더 효율적인 제도입니다. 따라서 복지동산에서는 기본미달소득 마저도 지급할 합리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복지동산에서의 복지정책은 기본미달소득이 아닌 전통복지제도로 복귀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제 결론이 났군요. 기본소득제도는 복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도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기본소득제도는 자유와 어울리는 제도입니다. 노동과 상극인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에덴동산 이외의 그 어떤 동산에서도 서식할 수 없는 초청정 제도입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제도를 채택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복지동산을 떠나 에덴동산으로 이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이겠지만 도리가 없습니다. 선택은 두가지로서 명백합니다. 복지동산에서 노동하면서 살 것인 가 아니면 에덴동산에서 과일을 따먹으며 살 것인가 이 두가지입니다.

감옥에서 20년간 징역을 살던 사람은 출옥하기를 꺼립니다. 자유보다는 감옥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외부 자유세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생경한 세계로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지금의 인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노동이란 감옥에 익숙해 있습니다. 인류는 지난 수만년간 이 감옥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본소득이라는 열쇠가 나타나 복지동산, 즉 노동동산의 굳게 닫힌 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이미 인류의 생산력은 1970년대 정도에서 충분한, 즉 기본미달이 아닌 기본초과소득까지도 가능한 단계까지 올라섰습니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이 되었건 아니면 그 외의 다른 제도가 되었던 노동동산의 문은 이미 열려져 있었던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 문 밖으로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바로 옆 동산이 에덴동산이고 그 입구가 훤히 열려 있는데도 그곳으로 이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노동은 인민의 의무이자 명예가 아니라 치욕이자 자해행위입니다. 죄악으로서 범죄행위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선악과의 독성이 완전히 해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류는 노동이 여전히 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이 악이 되는 에덴동산으로 올라가기를 꺼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그들의 눈에는 죄악의 동산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최근 많은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운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은 복지동산에서의 기본소득을 운운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복지노동동산에 머물러 있으며 결코 이 동산을 떠나지 않는 전제하에서의 기본소득 실시를 검토하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이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또한 불가능한 발상입니다. 노동와 기본소득은 서로 물과 기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동산에서의 기본소득 실시 검토는 시지푸스의 바위처럼 영구히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굴러내리기만 반복하는 그런 검토가 될 뿐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무모하게 이를 현실적으로 실시하게 된다면 국가나 지방재정은 파탄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복지동산 경제는 붕괴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핀란드나 네덜란드 등 기본소득 선진국이라는 곳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기본소득 선진국이라는 의미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 비하여 실무적으로 조금 앞서 있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부분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는 한국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즉 그들 역시 복지노동동산을 전제로 하여 기본소득 실시를 검토하고 실험에 착수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무의미한 실험이 될 뿐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이 글이 발표되었으므로 전세계에서 기본소득에 관하여 가장 앞선 나라는 바로 한국입니다. 주체성을 가지고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