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본질

작성자
retelf
작성일
2016-09-02 08:40
조회
513
기본소득에 관한 대표적인 단체인 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에서 기본소득을 정의할 때 한가지 빠진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요소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그것은 기본소득 지급의 영구성입니다. BIEN에서는 통상 다음과 같이 기본소득을 정의합니다.

1. 가계 기준이 아니라 개인단위로 지급한다.
2.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지 여하를 묻지 않는다.
3. 구직의사가 없어도 좋다. 즉 노동포기 내지 노동부정을 해도 좋다.

하지만 이 정의는 불필요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필요한 것은 빠져 있는 불완전한 정의입니다. 불필요한 것이란 1번과 2번이고 필요한 것이란 위에서 언급한 기본소득 지급의 영구성입니다. 결국 기본소득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다음 두가지로 축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노동부정
2. 영구지급

이것이 기본소득입니다. 재산소유나 소득여하, 개인기준지급 기타 수다한 다른 첨가물들은 다만 데코레이션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 전세계의 기본소득 운동이 혼란에 빠져있는 이유는 바로 기본소득의 개념 자체부터 제대로 세워놓지 않은 채로 그들 운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본질적인 부분 보다는 데코레이션 부분에 오히려 비중을 두면서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노동부정은 두가지 측면으로 구분해서 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노동부정 그 자체와 노동부정의 현실성이 그 두가지입니다.

노동부정 그 자체에 관하여서는 기존 주류기본소득론은 문제회피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대부분 좌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좌파는 노동을 종교로 모시고 있는 집단이므로 노동을 부정할 수 없으며 지구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노동을 찬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 좌파적 성향이 그리 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노동신을 대놓고 부인하지는 못하며 어중간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도가 개인적으로는 기독교를 믿으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그런 정도라고나 할까요? 하여간 분명치 않습니다. 그들은 노동의사 내지 구직의사(work requirement)는 기본소득 수급의 ‘장애사유가 아니’라는 정도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노동신을 부정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들은 노동신을 숭배하는 노동교인이라 할지라도 너희들 이교도들에게 노동교를 믿지 않아도 되는 종교의 자유를 줄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정확한 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의 실시로 인하여 노동의욕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장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그러한 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동부정의 현실성이란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소득 지급의 충분성을 의미합니다. 다만 그 지급의 충분성의 기준이 바로 노동부정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즉 기본소득은 노동부정이 가능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노동부정의 현실성의 의미입니다. 이 개념은 또한 기본소득의 재원조달 규모의 결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 중 대표적인 하나가 기본소득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인데 이 경우 그 조달규모가 얼마가 되어야 하느냐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정설이 없는 형국입니다. 스위스는 월 300만원 한국은 월 30만원(강남훈 교수) 등등 도대체 기준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느냐에 관한 논의도 없습니다. 마치 백정이 고기를 툭 잘라서 던져주는 식으로 기본소득의 지급규모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그 재원조달규모를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먹구구의 전형입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주먹구구가 바로 스위스 국민투표에서의 월 300만원이었습니다.

기본소득은 배고프지 않은 소크라테스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결국 장발잔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배부른 돼지가 될 정도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배부른 돼지도 아니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도 아닌 행복한 소크라테스의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의 목적입니다.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배를 불리면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할 일이며 그런 사람에게까지 혈세를 뿌려줄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도 만약 지급하겠다면 그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본초과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뿌려져야 합니다.

반면 기본미달소득 역시 기본소득이 아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알래스카에서 실시되고 있는 알래스카펀드(Alaska Permanent Fund)을 바탕으로 지급되는 월 20만원 정도의 분배금은 기본소득이 아닙니다. 만약 그 돈 이외의 수입이 없는 사람으로서 노동부정을 외치기 위해서는 결국 장발잔이 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은 기본초과소득도 아니고 기본미달소득도 아닙니다. 이 때 그 초과나 미달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이 바로 ‘노동부정의 현실성’인 것입니다. 자유의 현실성인 것입니다. 판 파레이스가 외치는 ‘실질적 자유’란 바로 이 개념인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두번째 본질적 요소는 기본소득 지급의 영구성입니다.

현재 기본소득 - 실험의 -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핀란드나 네덜란드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은 모두가 영구적 지급이 아닌 한시적 지급을 전제로 하면서 이를 ‘기본소득’의 실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본소득 실험이 아닙니다. 기본소득과는 전혀 관계없는 실험입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는 일정기간 동안의 보너스 지급실험일 뿐입니다. 기본소득의 본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실험이며 그 실험의 결과는 진정한 기본소득 실험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낼 뿐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기본소득, 즉 영구성을 전제로 하는 - 물론 충분한 -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경우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이탈하게 될 것이지만 일시적인 보너스를 지급하는 경우에는 절대 기존의 일자리를 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아니라 설령 기본초과소득을 지급하는 경우라도 그들은 절대 일자리를 놓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보너스 지급 이후를 대비하여 그 돈을 저축하거나 아니면 그 돈을 투자하여 좀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할 것입니다. 딱 2년간의 보너스를 믿고 자신의 직업을 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핀란드나 네덜란드는 그런 한시적인 보너스 지급을 통하여 영구적 지급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상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원숭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만큼은 그들이 그야말로 원숭이들입니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스스로 자찬하는 대표적인 기본소득 성공사례가 나미비아의 경우입니다. 이 경우도 2년간 지급하는 실험이었습니다. 1인당 월 15,000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었는데 - 확실치는 않아도 - 이 정도면 그들에게는 기본미달소득은 아닌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를 받은 원주민들은 그 돈으로 저축을 하거나 아니면 투자를 해서 돈을 벌거나 했습니다. 이를 보고 주류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의 성공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사례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반드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보너스사례일 뿐입니다. 찌들게 가난한 사람에게 ‘한시적으로’ 돈을 주면 그들은 그 한시적인 기간 이후의 삶을 위하여 그 돈을 사용하거나 저축합니다.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 돈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습니다. 않는 게 아니라 못합니다. 하지만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영구히 명실상부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경우 그들 중 상당수가 노동으로부터 이탈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이 상식에 합당한 예측입니다.

따라서 만약 진정한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자 한다면 전국민적인 로또 추첨을 해서 당첨된 약 1,000 ~ 2,000명 정도에게만이라도 영구적으로 - 그리고 적어도 그들의 1대 자식들에게까지만이라도 - 기본소득 지급을 약속해 주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그리고 이 경우에만 기본소득 지급의 진정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