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를 쓴 오준호 작가의 블로그 글이다.

토론회 ‘새로운 헌법과 기본소득’ 후기

30년 만의 개헌, 기본소득을 헌법에 넣자!

2018년에 예고된 헌법 개정에서, 기본소득을 헌법상 국민의 권리로 만드는 개헌 운동이 시작되었다. 어제(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새로운 헌법과 기본소득’ 토론회도 그 하나. ‘온국민 기본소득 운동본부’와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가 주최했다.

법학자 이준일(고려대), 오동석(아주대) 교수와 정치경제연구소 금민 소장이 발제하고 군산대 서정희 교수가 사회를 보았다. 이준일 교수는 “기본소득을 헌법에 포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에 대해 발표했다. 핵심은,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인 ‘사회적 기본권 원칙’과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칙’에 바탕하여 기본소득이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는 것.

헌법의 사회적 기본권 원칙은 제34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조항은 다시 말하면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할 권리이기도 하다.

한편 헌법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칙은 제119조의 ‘경제 민주화’ 조항에서 드러난다. 이 조항은 우리나라 경제의 기본질서를 시장경제라고 정하면서도 경제적 균형,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의 공정성 등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의 시장 개입을 허용한다. 이 두 원칙에 따라, 국민의 최저 생활 기준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헌법상의 권리는 입법을 통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 헌법은 국회와 정부에 국민의 기본권 실현과 향상을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는 것인데, 국회와 정부가 이 요구를 태만히 하고 있어 문제가 생긴다. 비단 기본소득만이 아니라 노동자, 여성,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평등권을 위한 입법이 세월아 네월아 하며 보류되는 ‘입법 부작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현 제도에서 국민은 이 입법부작위에 대한 시정을 명령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청원할 수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청원을 받아들이는데 지극히 소극적이다.

그래서 오동석 교수는 개헌은 기본권 실현의 한 가지 길일 뿐이며 ‘촛불혁명’으로 보여준 민의의 압력을 정부와 국회에 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헌법도 해석함에 따라 기본소득 도입이 가능한데도 되지 않는 것은 현행 헌법이 지닌 한계보다는 기본권 향상을 가로막는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 말은, 헌법에 기본소득을 포함한다고 해도 권력 구조가 그대로라면 여전히 구체적인 입법은 가로막히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다.

금민 소장은 “그럼에도 개헌과 같은 ‘규범 투쟁’은 아주 중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제안해온 운동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어 왔고, 일정한 성과-정책에 반영되거나 정부 차원의 실험 착수-를 거두었다. 그런데 이 제도와 실험의 설계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본래 취지가 축소되거나 변형되곤 했다. 또한 근래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을 가장 널리 알리고 논쟁을 촉발한 사건이 무엇인가.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다.

이러한 점들이 기본소득의 정신과 원칙을 규범으로 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주권자가 헌법을 만들자! 이건 현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혁명의 시대 정신에도 들어맞는다.

금민 소장은 헌법상 사회적 기본권 원칙의 해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기본권은 빈곤층을 지원하는 취지로만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소득의 최저선을 보장하여 빈곤을 예방하는 ‘선분배’의 근거”로 해석되어야 한다.

또 우리 헌법에는 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를 인정하고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준다는 ‘보충성의 원리’가 있지만, 이 원리가 반드시 선별적 복지나 사후적인 조정만을 뜻한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최저선을 먼저 채워주고, 그 위에서 “각자 알아서 삶을 펼치라”고 해도 된다. 기본소득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권을 강화해 ‘실질적 자유’로 우리를 이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초 자체 개헌안을 제시하면서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를 제30조로 앞당기고 2항 “국가는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인권위의 제안은 기본소득 개헌운동에 매우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금민 소장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자고 한다. 국가에게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하는 정도를 넘어, 기본소득을 ‘국민의 권리’로 못박도록 우리가 안을 제시하고 국민적 압력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

8월 말부터 기본소득 개헌을 국회에 촉구하기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이 시작된다. 나도 강의가는 곳마다 서명용지를 들고 다니려고 한다. 주권자가 헌법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