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기본소득이 낯설고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제법 오래된 역사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역사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공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부상한 구체적 맥락을 검토하게 함으로써 이 아이디어가 진전하는 조건과 이를 가로막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NOTE. 2017년 8월부터 월간지 <시대>에 연재되고 있는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시리즈를 가져온 것입니다.

죠셉 샤를리에의 기본소득 구상

글쓴이: 안효상

PREVIEW

1848년 혁명은 최초의 세계적(지리적으로는 유럽적) 혁명이었으며, 비록 혁명 자체는 실패했지만 혁명의 요구였던 정치적 자유와 사회권이 이후 점차 구현됨으로써 현대사회로의 전환점을 이룬 혁명이기도 했다. 특히 1848년 2월 혁명 이후 파리에서 벌어진 6월 봉기를 “근대사회를 나누는 두 계급 간에 벌어진 최초의 대전투”라고 보면서 이후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맑스의 판단은 이 혁명의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바라본 것이었다.

1848년 혁명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근거는 그 혁명이 사회권의 제기였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시장경제의 진전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윤 추구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적 경기변동의 변덕에 얽매이게 되었다.

물론 프랑스혁명기에 생존권이 이미 제기되었지만, 최종적으로 나뽈레옹의 제한된 혁명과 왕정복고로 인해 19세기 전반기의 정치적 지형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을 기본으로 형성되었고, 노동자와 민중의 요구는 제한적으로만 목소리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지형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프랑스의 1830년혁명과 영국에서 있었던 1832년의 제1차 의회 개혁이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터져 나왔고, 가장 격렬했던 것이 1831년과 1834년의 리용 봉기였다.

[전체 글은 아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