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이 월간 <시대> 50호(2017년 7월)에 기고한 글이다.

기본소득 뉴스

국내 기본소득운동 업데이트와 ‘공유부 배당’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

이번 글에서 전할 기본소득 소식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두 종류의 기본소득운동, 즉 서울시 청년기본소득을 위한 조례 주민발의운동과 개헌안의 주요내용에 기본소득이 포함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온국민기본소득운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기본소득 지지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공유부(공유재) 배당론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돌아오는 9월에 열릴 제17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 소식이다.

서울 청년기본소득조례 주민발의운동 & 온국민기본소득운동

지자체에서부터 기본소득을 시행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서울시의 모든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조례를 주민의 힘으로 발의하는 데 뜻을 모은 시민단체와 정당들이 결성한 ‘서울시 청년기본소득조례 주민발의 네트워크'(약칭 서울청년기본소득넷)가 그것이다. 성남시 청년배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운동은 무엇보다 기본소득 ‘체험’에 주목하고 있다. 즉 국가 차원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액수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당장 실시 가능한 기본소득 모델로 기본소득의 전면화에 접근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청년’ ‘기본소득’은 온전한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한 단계적 실험이자 지지 확대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청년기본소득넷은 올해 초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제안으로 구성되었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노동당 서울시당, 녹색당 서울시당, 녹색전환연구소, 우리미래 서울특별시당, 우주당, 청년좌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대학청년위원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청년기본소득조례 초안을 마련했고, 몇 차례의 공론화 작업을 거친 후 8월경 정식 발족할 예정이다. 7월 5일에는 청년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공론화 행사인 <열린 간담회 "서울시가 모든 청년에게 돈을 준다고?">가 열리고, 8월에는 기본소득에 관심 있는 여러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모으는 토론회가 성사되도록 준비하고 있다. 조례 발의를 위한 주민서명운동은 2018년 초에 시작할 계획이다. 또한, 서울청년기본소득넷은 청년기본소득조례 제정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지역순회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내년 지자체선거와 함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에 맞춘 기본소득운동 또한 시작되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제안하여 준비되고 있는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가 그것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지난 6월 17일 운영위원회/이사회에서 “30년 만의 개헌, 기본소득 개헌으로”라는 모토로 기본소득을 개헌내용에 포함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로 했고, 이 운동을 위한 중심체로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를 꾸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개인과 단체들의 힘을 모으기로 했다. 때마침 반갑게도, 지난 6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본권 보장 강화”를 위한 헌법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그 개정안에 기본소득이 포함되어 있다. 즉, 현행 헌법 제34조 1항은 “모든 사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는데, 이를 “제4절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제30조 ① 모든 사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본소득에 관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와 같이 바꾸어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소득으로 만들자는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개정안에 대해 7월 말까지 의견수렴을 한다고 한다.

‘공유부’에 대한 정당한 몫: 주목받는 기본소득론

최근 한국의 기본소득 지지자들 사이에서 공유부(공유재)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정당화론을 구성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정당화론이란 그 주장이 왜 정당한지를 설명하는 논거인데, 기본소득의 정당화론은 그동안 ‘실질적 자유’와 ‘정치공동체의 의무이자 그 구성원의 권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실질적 자유’ 중심의 기본소득론은, 물질적 의존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기본소득은 개개인의 물질적 토대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인격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준다는 정당화론이다. ‘정치공동체의 의무이자 그 구성원의 권리’ 중심의 기본소득론은 공화주의적 기본소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는 그 구성원, 즉 주권자들의 정치(공적 지배) 참여를 가능케해야 한다(구성원의 공적 참여가 가능하지 않다면 정치공동체는 공동체로서 존재이유를 잃게 된다). 그리고 정치 참여가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권과 사회경제적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그중에서 사회경제적 기본권 보장이란 구성원의 인간다운 생활과 사회 참여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켜준다는 의미이며, 그 맥락에서 오늘날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회적) 공화주의 기본소득론이다.

그런데 최근에 더욱 주목받는 정당화론은 ‘공유부에 대한 정당한 몫’이라는 논거이다. 이런 접근방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의 역사를 살필 때 맨 위에 등장하는 것이 프랑스혁명 시기 토머스 페인(과 토머스 스펜스)의 토지공유사상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페인은 인간이 이용하는 땅의 소유권이 자연적 소유권과 인공적 소유권으로 구성되어 있음에 주목하면서 공유부 배당론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토지로 얻은 산물에는 구체적 개인이 노력을 들여 발생하는 인공적 소유권 몫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하는 자연적 소유권 몫이 있기 때문에 그 자연적 소유권 몫을 1/n로 모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토머스 스펜스는 토지의 사적 소유란 본래 ‘찬탈’의 결과라고 보면서 자연적 소유권, 즉 공동소유권만을 인정한다. 하지만 스펜스는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을 일치된 것으로 보지 않았고, 그래서 구체적 개인에게 임대방식으로 경영권을 주고 그 임대수익을 모두에게 이롭게 쓰자는, 즉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기초지출(임대수익의 1/3)과 1/n 배당(임대수익의 2/3)으로 쓰자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토지 배당론은 ‘확장된 개념의 토지’, 즉 여러 공유재 또는 공유부에 대한 정당한 몫이라는 현대적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주목 현상은 왜 생긴 것일까?

우선, 공유부(공유재)와 그 배당이라는 개념이 오늘날의 경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토지와 전파 등 자원의 사적인 소유 또는 독점적 점유로 소수 기업과 개인들이 막대한 부를 쌓아가는 상황, 그로 인해 빈곤과 경제 불평등이 더욱 심해진 상황에 맞서는 개념, 다른 한편으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전망을 비관적이지 않게 이끌 수 있는 개념이 바로 ‘공유부 배당’이다. 공유부(공유재)의 현대적 해석에 따르면, 특정 개인이 창조한 산품은 앞선 세대들과 동시대인들의 도움과 협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따라서 특정 개인이 낳은 수익에는 앞선 세대들과 동시대인들의 몫이 있으며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그 몫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197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한 개인이 이룬 성과의 90% 이상이 축적된 사회자본(과학지식, 사회제도 등)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 바도 있다.

이처럼 ‘공유부 배당’은 로봇, 인공지능, 무인운송수단, 3D 프린터, 사물인터넷, 나노기술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킬 변화를 공포스럽지 않게 맞이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기존의) 산품들을 인간의 직접적 노동 없이 생산하는 구조가 확대되고 그에 따라 개인들은 지불노동을 해서 소득을 벌어들이기 매우 어려워지는 공상과학영화가 임박한 현실로 여겨질 때, 로봇의 주인이 시혜를 베풀길 기다리는 대규모 잉여들로 전락하지 않을 사회경제구조가 가능하고 또 정당하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공유부에 대한 정당한 몫’은 너무도 자명한 개념이라서 강력한 기본소득 옹호론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본소득을 반대하는(우려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여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들에게 소득을 보장해줘서는 안 된다는, 노동윤리는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현실에서 기존복지(사회서비스와 사회보험)의 강화와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그 강화와 개선을 위해서 국가재원을 우선 배정해야 하는데, 그런 과제에 기본소득이 걸림돌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이에 대응해서 권리로서의 기본소득,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시대의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 OECD 평균 수준의 증세를 통한 복지 강화와 기본소득 도입 등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설명해왔다. 그럼에도 노동 기여의 윤리가 여전히 강력하고, 제시된 도입모델들의 기본소득 액수가 삶을 바꿀 만큼 충분하지 못함에 따라,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기본소득과 여타 복지정책(과 경제정책)을 선택의 문제로 보고 기본소득이 우선적이지 않다는 논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에 공유부 배당으로 접근하는 기본소득은 기존의 과제와 정책들에 끼어서 위치를 확인받지 않고 일종의 신설항목으로서 도입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덧붙여서, 이러한 주목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안팎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을 더 강하게 이어줄 수 있는 끈이 생기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특히, 헨리 조지의 지공주의(地公主義)를 중심으로 기본소득론을 전개해온 토지+자유연구소 등, 1980년대 말 이후 토지공개념의 실현을 위해 애쓰는 연구자들과 시민들과 협력하고 논의를 심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제17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9월 리스본에서 열리다

9월 25~27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제17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대회가 열린다. BIEN 대회는 그동안 2년에 한 번씩 열렸는데, 이번엔 1년 만에 열리는 것이다. (작년 서울 BIEN 총회에서 BIEN 정관상의 대회 주기가 “최소” 2년에 한 번임을 확인했고, 그래서 앞으로는 1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열릴 예정이다. 제18차 대회는 2018년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기로 했다.)

이번 제17차 대회는 “기본소득의 시행(Implementing a Basic Income)”을 주제로 삼았는데, 최근 전 세계에서, 특히 고소득 국가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실험들(이라 불리는 것)”을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소득을 위한 경제모델’, ‘유럽의 기본소득에 대한 경제적 찬반론’, ‘다양한 파일럿 프로젝트들의 평가와 전망’, ‘기본소득의 정치학’, ‘기본소득과 다른 복지수당들의 관계’, ‘노동의 미래와 기술이 낳는 실업’, ‘빈곤의 비용들’, ‘기본소득, 불평등, 사회 부정의’, ‘기본소득, 가족, 젠더와 집단 기반의 억압’, ‘기본소득 확산과 관련한 소통 결과와 전략들’ 등이 논의주제들이고, 에블린 L. 포르제(캐나다, 1970년대 민컴Mincome 실험 연구자), 엘리저베스 로즈(미국, Y 콤비네이터의 오클랜드 실험 실행책임자), 사라 비자후(포르투갈), 루이즈 하그(영국, BIEN 집행위원회 의장), 잉리트 로베인스(네덜란드, 네덜란드 지자체 사회부조 실험들 관련), 필립 판 파레이스(벨기에, BIEN 공동창립자), 조 휴스턴(미국, 기브다이렉틀리의 케냐 기본소득 실험 관계자), 위르겐 데 비스펠레레(핀란드 기본소득 설계연구팀), 가이 스탠딩(영국, BIEN 공동창립자 ) 등이 주요발제자들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는 대전 기본소득 실험 ‘띄어쓰기 프로젝트’ 공동기획자인 김재섭 회원과 이건민 회원이 발표자로 참여한다. 김재섭 회원은 ‘띄어쓰기 프로젝트’의 보고와 소평을 할 예정이고, 이건민 회원은 ‘기본소득이 노동의욕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학적 모델로 분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