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교성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이 <한겨레> 2019년 2월 15일자에 기고한 글이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결과 제대로 보기

김교성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기다리던 정책보고서가 나왔다. 핀란드 정부가 2017년부터 2년 동안 수행한 기본소득 실험의 일부를 ‘예비 결과’로 발표한 것이다. 기본소득 실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시점에 이 실험은 중앙정부가 주도했고, 무작위 할당을 통해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을 구성해 정책효과를 장기간 관찰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실험의 목적은 기본소득이 실업급여 수급자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참여를 강화하는지 확인해 정책의 노동공급 효과를 검증하는 데 있다. 실험집단에 할당된 2천명에게는 한달에 560유로(약 72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했고, 통제집단에 포함된 사람에게는 기존의 실업급여를 지급했다.

일단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대안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한 핀란드 정부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몇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실험에 참가한 대상이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에게 집중돼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험의 목적도 실업급여에 포함된 재취업 조건에 관한 것에 가까워, 기본소득의 본래 취지와 거리가 있다. 예산상의 이유로 애초 계획에 견줘 실험 규모와 기간도 축소됐다. 사전조사를 벌이지 않아 시계열적 변화에 대한 관찰을 할 수 없는데다, 참가자의 ‘반응성’ 문제로 정책 효과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를 추론하고 결과를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실험 결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불편하면서도 반갑다.

실험의 핵심 결과는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노동시장 성과와 관련해, 기본소득을 제공받은 집단의 평균 고용 일수와 자영업 종사자의 비중이 실업급여를 지급받은 집단에 비해 높게 나타났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의 고용 성과가 실업급여 수급자에 비해 개선되지도 악화되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이 결과에 대해 일부 국내 언론의 보도는 다소 악의적이다. ‘실업자에게 실업급여 대신 기본소득을 보장했지만 실업문제 해결에 별 효과가 없어 실패한 실험이며, 핀란드 정부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실험집단의 고용 성취 수준이 통제집단에 비해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기본소득을 수급한 사람이 나태해지거나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낡은 우려를 불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나아가 기존 ‘활성화’ 정책의 고용 증진 효과가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실험의 더욱 중요한 발견은 다양한 ‘행복’ 관련 변수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행복하고 건강하다’고 느꼈으며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 신뢰 수준, 전반적인 삶의 질,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도 더 높게 나타나 기본소득의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한 셈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은 기여를 전제하고 낙인을 동반하여,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발생시키고 사회적 계층화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사회정책의 목적은 개인의 행복을 증진하고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좋은 삶’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하는 데 있다. 이번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는 유급노동에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정책의 새로운 길을 밝혀주고 있다. 참고로 상세한 내용이 담긴 최종 보고서는 2020년에 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