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라벤토스 인터뷰] “기본소득,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가 중요!”

2015년 12월 21일 바르셀로나 보른 지역에 있는 한 카페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안효상 이사가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 대표이자 바르셀로나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다니엘 라벤토스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라벤토스는 공화주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기본소득: 자유의 물질적 조건>(2007년)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기본소득이 여러 정치적 경향과 이론적 관점에서 지지받고 있는 이때, 어떤 기본소득인가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 글은 월간 <좌파> 33호(2016년 1월호)에 실렸고,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어떤 이유로 기본소득을 수용하게 되었나?

Daniel_Raventos

1998년인 것으로 기억한다.‘기본 소득(basic income)’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보편적 지급(universal grant)’이 라는 개념이었는데, 내용상 기본소득과 같은 것이다.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시민의 생존 조건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이것이 기본소득을 수용한 계기라 할 수 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당신은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다. 주요한 논점은 무엇인가?

공화주의적 자유는 2,300년에서 2,4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개념이다. 공화주의적 관점을 요약하면, 사회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생존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기본소득이 물질적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공화주의적 자유에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과두제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적인 것이다.

민주주의적인 관점의 공화주의적 자유는 자유의 보편화를 바라며,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까지 포함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과두제적인 공화주의 적 자유는 부유한 재산 소유자가 권력을 독점하도록 하며, 따라서 자기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민적, 정치적 생활에서 배제하려 한다. 이 두 종류의 공화주의적 자유의 기본 개념은 같은 것이다. 차이는 이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의 범위다. 당연하게도 공화주의적 자유를 기초로 하여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모든 주장은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이때 중요한 인물이 아테네의 에피알테스(Ephialtes)다. 기원전 462∼461년에 아테네에서 에피알테스의 개혁이라 불리는 일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정치적 업무를 맡는 것에 대해 점차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140년 동안 아테네는 가난한 사람들의 민주적 당파에 의해 통치될 수 있었다.

‘5월 15일 운동’, 그리고 여기서 배태되었다고 할 수 있는 포데모스가 기본소득을 주장과 정책으로 내걸었다. 새로운 운동과 정치세력의 형성에서 기본소득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기본소득은 반부패를 비롯해서 ‘분노한 사람들’이 내건 다섯 가지 요구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2014년 5월에 있었던 유럽의회 선거에서 신생 정당인 포데모스가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 점에서도 ‘분노한 사람들’, 즉 ‘5월 15일 운동’과 포데모스의 연속선이 있다. 포데모스의 이른바 기초 단위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높다. 물론 기본소득 때문에 포데모스가 성공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포데모스가 유럽의회 선거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기본소득이 널리 퍼진 것은 분명하다. 기본소득이 주요한 미디어 에서 거론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도대체 기본소득이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회당 정부의 총리인 사파테로가 공화주의적 견해를 지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화주의 이론가인 필립 페팃을 스페인에 초청하기도 하지 않았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José Luis Rodríguez Zapatero)는 완전히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 공화주의와 자유주의가 같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공화주의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필립 페팃(Philip Pettit)은 아카데믹한 의미에서 공화주의자이며, 네오로마적 공화주의자이며,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자라고 보기 어렵다. 앞서도 말한 에피알테스가 중요한 인물이며, 나는 그를 기본소득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사파테로 정부가 2010년 5월에 긴축정책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리고 2011년 선거에서 국민당에게 패배했다. 물론 국민당 정부가 사회당 정부의 긴축정책을 이어갔지만 말이다. ‘5월 15일 운동’은 여기에 분노한 것이다.

유럽의회 선거와 달리 이번 총선에서 포데모스는 기본소득을 강령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포데모스의 기초 단위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과 달리 지도부는 기본소득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회 선거가 끝나고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어떤 기자가 포데모스의 지도자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에게 기본소득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기본소득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조세개혁 없이 무조건 지급이라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그 기자도 재원이 없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한마디로 그는 기본소득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포데모스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는 게 흥미로운 일이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포데모스가 기본소득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포데모스의 총선 경제 강령을 기초한 게 경제학자인 비센스 나바로다. 기본소득을 총선 공약에서 제외한 것이 그와 관련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볼 때 비센스 나바로(Vicenç Navarro)는 기본소득의 적이다. 그는 이론적으로 볼 때 정통 사회민주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는 기본소득이 자유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회복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몇 번인가 그에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그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포데모스 안에 기본소득서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데모스가 기본소득을 포기한 것과 관련해서 이들은 어떤 활동을 했는가?

포데모스 내의 기본소득서클(Circlo Renta Básica)은 올해 내내 기본소득을 위해 싸웠다. 이 서클의 일부가 나를 비롯한 바르셀로나의 기본소득 활동가들과 재원 마련 등 기본소득의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해 여러 차례 토론을 벌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기본소득서클에서 말하는 모델과 내가 주장하는 모델은 아주 유사하다. 두 모델 모두 스페인에서 당장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 모델에 대해 말해 달라.

이론적으로 볼 때 보편적 기본소득의 재원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마련할 수 있지만, 스페인에서 수행된 가장 체계적인 연구는 개인 소득세의 철저한 개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 연구는 나를 포함해서 호르디 아르카 론스(Jordi Arcarons), 루이스 토렌스(Lluís Torrens) 등이 했다. (이 연구 결과는 http://www.redrentabasica.org/rb/rrbantigua_1184/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요약하자면 개인소득세 개혁을 통해 상위 20퍼센트에게서 나머지 80퍼센트에게로 부를 재분배하자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성인은 7,471유로를 받게 되며, 18세 이하 미성년자는 이의 1/5을 받게 된다. 이런 개혁이 이루어지면 지니계수가 0.25가 될 것인데, 이는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지니계수에 근접하는 것이다.

모든 기본소득 지지자가 공화주의적 자유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하며, 또 다른 일부는 재산에 기초한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한다. 종교적 관념에 기초하여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본소득을 옹호한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철학적, 경제적 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생각을 알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일반적인 옹호만으로는 생각을 알 수 없다. 기본소득을 어떻게 실현하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어떤 사람이 이득을 보고 어떤 사람이 손실을 보는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 대부분은 좌파다.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파 쪽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학계에서 그러하다. 정치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우파는 말 그대로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런 것이며,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기본소득 재원 마련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에 대해 말해 달라.

스페인네트워크는 2002년 제네바 대회에서 가입한 기본소득지 구네트워크(BIEN)의 “오래된” 지부다. 회원 비중을 보자면 카탈루냐 지역이 높은데, 대략 60퍼센트다. 이외에 바스크, 아스투리아스, 마드리드, 발렌시아 지역 등에도 회원이 꽤 있다. 스페인네트워크는 개인과 그룹 모두를 회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룹 회원의 경우 아탁과 바스크 지역 노동조합인 좌파노동조합연합(Ezker Sindikalaren Konbergentzia, 약칭 ESK) 등이 있다. 개인 회원은 노동조합 활동가, 사회운동가, 학자, 의원 등이다. 매년 도시를 바꾸어가면서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바르셀로나, 빌바오, 히온, 마드리드, 발렌시아, 팔마, 산티아고데콤포 스텔라, 비토리아 등에서 열렸으며, 2016년에는 다시 바르셀로나에서 열린다.

일상적인 활동은 강연, 학술대회, 세미나 등이다. 내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국제정치 저널인『허가 없이(Sin Permiso)』는 바르셀로나대학과 함께 대학원 협동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수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이며, 스페인네트워크 회원인 줄리 와크, 안토니 도메네치, 다비드 카사사스, 루이스 토렌스, 파코 라모스, 호르디 아르카론스, 호세 루이스 레이 등이 여기서 강의하고 있다. 안토니 도메네치와 내가 이 강좌의 공동 책임자다.

어제 있었던 총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국민당이 이겼지만 123석으로 과반수에 못 미쳤고, 주요 야당인 사회당은 90석을 얻었다. 이에 반해 두 신흥정당인 포데모스와 시민당(Ciudadanos)이 자기 몫을 챙겼다. 이로써 양당 체제가 깨지고 불안정한 정치 상태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정부 구성과 관련해서 첫 번째 가능성은 국민당과 사회당이 손을 잡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일종의 역사적 타협인가?

사회당은 좌파 정당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럽의 다른 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내부에서는 우파가 강하다. 이들이 국민당과 타협하기를 원한다. 사회당과 국민당의 공통점은 현행 스페인의 군주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78년 헌법 체제에 대한 어떤 개혁도 거부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국민당은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옹호하고 있으며, 사회당도 다르지 않다.

중앙집권적이라는 게 카스티야 중심적이라는 건가?

그렇다. 이들은 스페인이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완전한 통일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매우 중요하다. 이 운동은 78년 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78년 체제는 프랑코 체제와의 결별이지만 군주제를 기초로 하고 있고, 지금 군주인 펠리페 6세의 아버지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이 군주제의 상징이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벌인 부패와 호화 생활 등에 분노했다. 알고 있듯이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이 포데모스의 기원이며, 포데모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78년 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 구성과 관련한 또 다른 가능성은 무엇인가?

사회당과 포데모스가 기타 민족주의 정당, 좌파 정당과 손을 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78년 체제에 대한 태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선거를 해야 하나?

그럴 수도 있지만, 올해 이미 선거를 세 번이나 해서 대중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선거의 의미는 스페인 정치에서 양당 체제가 깨졌을 뿐만 아니라 불안정 상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전망에 대해 말해 달라.

지난 9월 11일 ‘카탈루냐의 날’에 200만 가까운 사람들이 바르셀로나 거리로 나왔다. 이제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매우 광범위한 운동이 되었으며, 따라서 거기에는 다양한 정치적 경향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카탈루냐 독립운동 내의 우파인 ‘민주주의와 자유(Democracia i Llibertat)’가 8석밖에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당은 현 카탈루냐 주 지사인 아르투르 마스가 이끄는 정당이다. 이에 반해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허용하자는 포데모스가 약진했다. 그러므로 독립운동 내에서 좌파가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
카탈루냐 독립 문제는 민족주의와만 연관된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쟁점은 군주제냐 공화제냐라는 문제다. 이런 점에서 카탈루냐 독립은 78년 체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의 일부이다.

끝으로 기본소득운동의 전망에 대해 말해 달라.

포데모스나 다른 정당에 있는 몇몇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곧 그렇게 될 거야.”이런 말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기본소득의 시대가 왔다고 확신한다.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 시와 같이 지역 단위에서 하는 실험은 특히 흥미롭다.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연관해서 말하자면 정치의 단위가 바뀌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기본소득이 적절하게 실현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새롭게 사고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기본소득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할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