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가 <월간 좌파> 27호(2015년 7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2015년 기본소득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오늘날 어떤 사회의 지배층과 권력층을 볼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말은 ‘무능’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현 정권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져버린 듯하다. 지배층의 부패가 현존 질서의 ‘정상성’을 가리킨다면, 무능은 침몰하는 배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선원들의 모습처럼 시대의 위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 모색, 주장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경제위기 배후에 소득의 불균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라는 형태의 소득이 더 이상 일반적인 것이라 볼 수 없는 이때 기본소득은 우선적으로 경제를 정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을 넘어서 민주주의를 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장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할 때 기본소득은 보통사람들에게 주권자이자 독립적인 시민으로서의 물질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끝으로 자기 시간을 다양한 분야에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문화 사회, 인간의 삶이 가능하면 그 토대인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는 생태 사회로 나아가는 데도 기본소득은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 7월 서울에서 열릴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대회의 주제를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으로 한 것은 이를 배경으로 한다. 지구네트워크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릴 대회가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지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얼마 전 서울에서 ‘지역 정치와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열린 2015년 기본소득국제학술대회는 안팎으로 내년 대회의 준비 정도를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학술위원회는 몇 년째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기본소득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고, 이번 학술대회는 이 가운데 일부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다른 한편 지구네트워크의 집행위원회는 지구네트워크 대회 전해에 행사 장소를 방문하여 대회 지역조직위원회와 준비 정도를 점검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집행위원장의 공동의장 가운데 한 사람인 칼 와이더키스트와 서기인 안야 아스켈란트가 방문했고 이들도 학술대회 발표자로 나섰다. 여기에 더해 학술대회 주제에 맞는 해외 연구자와 활동가 들을 초청하여 이번 국제학술대회가 그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를 ‘지역 정치와 기본소득’으로 한 것은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현재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현실적 논거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사회적) 공화주의에 근거한 시민권의 일부로서의 기본소득, 공동의 것인 자연적, 사회적 자원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으로서의 기본소득, 문화적,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방향 속에서 물질적 생산의 축소와 탈물질적 활동의 확대를 위한 기초로서의 기본소득, 빈곤의 제거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서의 기본소득, 작금의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기본소득 등이 그것이다. 이런 논거가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긴 하지만, 노동과 소득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강력한 ‘노동 윤리’에 가로막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할 때 다양한 수준에서 벌어진 기본소득의 사례는 현실적으로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강력한 논거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기본소득을 둘러싼 정치 자체를 검토할 필요성 때문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하나의 정책으로 입안되고,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어찌되었든 정치라는 장에 들어가야 하고, 또 정치를 구성해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주는 역할을 하며, 우리가 기본소득의 정치를 구성할 때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일정정도 알려준다.

이에 따라 이번 학술대회는 모두 4개의 부로 구성되었는데, ‘지역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국제 기본소득운동 사례 보고,’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가능성,’ ‘청년과 기본소득’이 그것이다. 이와 별도로 ‘기본소득 활동가 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여러 사회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주목받은 것 가운데 하나는 해외에서의 움직임 덕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스위스에 벌어진 기본소득 국민투표 발의가 큰 몫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문화적 충동>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져 있는 엔노 슈미트가 ‘기본소득과 직접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해주었다. 잘 정비된 복지국가라 할 수 있는 스위스에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노동에 기초한 임금과 연금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 따라서 적극적으로 인간의 활동과 삶의 물질적 기초를 분리해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만큼 중요한 것으로서 새로운 제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에너지의 동원 가능성이다. 스위스의 경우 국민투표 발의라는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이 가능했지만, 설사 그런 제도가 없는 경우에도 어떻게 기본소득을 위한 사회운동을 형성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스위스가 직접민주주의 제도에 따라 기본소득을 국민적인 의제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경우라면, 이른바 알래스카 모델은 기본소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이다. 알래스카는 1976년에 석유 수입에 근거한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설치하였고, 1982년부터 이 영구기금 수입으로 모든 알래스카 주민에 일 년에 한 번씩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수입이 변동하기 때문에 배당도 달라지는데, 최소 1천 달러에서 최대 3천 달러까지 지급되고 있다. 이 정도의 금액과 일 년에 한 번 배당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영구기금 배당이 문자 그대로의 기본소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칼 와이더키스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로 인해 알래스카가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알래스카가 기본소득의 주요한 사례로 언급될 때 항상 나오는 오해는 석유라는 특별한 자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냐는 논평이다. 물론 이는 알래스카 영구기금과 영구기금 배당이 석유 자원에서 나오는 수입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는 고유한 자원이 있다는 것이 와이더키스트의 주장이다. 그가 예로 드는 것은 휴대전화 사용에 이용되는 주파수 대역이다. 이를 공동의 재산으로 보고 사업자에게 제대로 된 가격을 받고 임대한 다음 이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인 것(the public)과 구분되는 공통의 것(commons)의 재발견은 역사적 사회주의의 국가 소유의 경험 그리고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국가의 기능 등을 감안할 때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합한 사회’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주요한 함의를 주고 있다. 물론 근대 국가 성립 이후 공통의 것이 공적인 것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통의 것에 대한 개인들의 권리 천명 및 접근권의 현실화는 공적인 것으로부터 소외를 제어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알래스카 모델에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현실 정치에서 보편적인 정책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함이다. 특히 다양한 복지 제도가 공격받고 있는 오늘날 복지 사회를 더 밀고 나기기 위해서는 특정한 표적을 설정하는 정책과 제도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부 혹은 대다수를 포괄하는 의제의 제출이 중요하다고 할 때 기본소득은 거기에 값하는 의제라 할 수 있다. 이는 금민, <기본소득 정치운동의 가능성: 유럽과 한국의 비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논점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금민은 유럽과 달리 기본소득 운동 혹은 정치적 의제로서의 기본소득의 계기가 약한 한국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 연계된 노동 의제로서 기본소득을 제출하는 것이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15년 넘게 한국 사회가 겪은 것은 분명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보적인 사회 복지를 경험하면서 미래 가치로서의 보편 복지가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여기에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이 OECD의 일원이 된 것을 기저로 하며, 신자유주의가 이른바 잔여적 복지를 어느 정도 필요로 한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이 속에서 한국의 진보 정치 운동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현실적인 의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진보 정치 운동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무상급식, 무상의료, 부유세 등을 꼽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런 바탕에는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정렬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진보 정치 운동은 겉으로는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모두가 사회민주주의 혹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내세웠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보 좌파 진영 일부에서 말하는 노동 중심성 또한 이것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조직된 노동자 운동을 복원하는 것에 기초하여,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 동맹을 구성하는 것이 현재 진보 정치 운동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가치의 주장은 말 그대로 사회민주주의의 진화 속에서 덧붙여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모범이라 불리는 북유럽 나라들의 현황은 시대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안야 아스켈란트의 발표인 <북유럽 나라들의 보편적 기본소득>에 따르면 우선 북유럽 복지 모델 자체의 변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노동법의 탈규제, 프레카리아트의 확대와 같은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변형이 있으며, 여기에 더해 로봇화와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는 이제 역사적 추세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웰페어(wellfare)에서 워크페어(workfare)로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나라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 모든 북유럽 나라에서 보편적 기본소득 운동이 늦게나마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얼마 전에 총선을 있었던 핀란드의 경우 당선된 의원의 60퍼센트 이상이 기본소득에 찬성하고 있으며, 곧 파일럿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런 북유럽의 움직임을 아스켈란트는 복지국가를 “업그레이드하고 단순화”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시민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이런 패러다임으로 나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에서 벗어나 삶과 (지불) 노동을 분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점 때문에 북유럽 나라들에서도 사회민주당은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다수가 적절한 지불 노동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대안으로 삼아야 하는가?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은 정치적 의제가 될 때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보르하 바라게의 <포데모스의 의제에 포함된 기본소득>과 금민의 <기본소득 정치운동의 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다. 바라게의 글은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기본소득을 정책의 하나로 삼았던 포데모스가 총선을 앞둔 현재에는 이를 뺀 이유를 찾는 것이다. 바라게는 이를 ‘운동 정당’에서 ‘포괄 정당’으로의 위상 변화와 연관시키고 있고, 기본소득에 대한 포데모스 지지자들의 인식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2011년 5월 15일 운동에서 출발한 포데모스는 새로운 정치를 무기로 기존 정치의 장에 진입했고, 따라서 기본소득 같은 의제가 거기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포데모스 지지자 상당수가 기본소득을 지지하긴 하지만,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기본소득은 사실상 최소소득 보장에 가까운 것이었다. 따라서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포데모스로서는 그런 지지층의 인식에 근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바라게의 발표에는 나오지 않지만 단기적으로 볼 때 엄청난 채무를 짊어진 스페인의 포데모스로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 기본소득을 정책을 내거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런데 바라게의 이런 논의에서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함의는 도리어 기본소득 운동에 긍정적이다. 다시 말해 진보의 재구성 혹은 새로운 좌파를 주장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운동 정당을 구성할 것인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도 언급한 금민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한국은 비정규불안정 노동이 가장 많고, 노동 소득의 하락을 가장 크게 경험하고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보편성에 대한 추상적인 옹호가 아니라 노동 사회를 재구성하는 구체적인 전략으로 기본소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강남훈 등의 <청년 배당의 필요성: 성남시의 경우>이다. 이것이 주목받은 이유는 당연하게도 한국에서 최초로 실시되는 기본소득의 일종으로 제안되었기 때문이며, 좋은 의미에서이건 나쁜 의미에서이건 주목받는 정치인인 이재명 시장이 이 제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번 국제학술대회에 축사를 하기 위해 오기도 했다.

강남훈의 발표에는 청년 배당의 필요성을 다음 일곱 가지로 말하고 있다: 취업 역량 강화와 인재 육성, 글로벌 경쟁력 강화, 기회 균등 보장, 세대 간 형평성, 경제에서 리스크 감소, 지역 경제 활성화, 복지국가 건설 촉진. 하지만 기본소득의 실현을 위해 이 제안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바로 노동가능인구로 분류되는 청년층에게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배당을 지급한다는 것이며, 이로부터 어떤 효과가 나올지가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청년 배당은 특정 지역 내에서만 (이 경우에는 성남시) 통용되는 지역 화폐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의 재원 및 경제적 효과가 관련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외에도 충칭 모델을 다룬 추이 즈위안의 발표, 인도 프라데시 주의 기본소득 프로젝트에 대한 사라트 다발라의 보고, 공유재 개념과 현물 기본소득을 연결하는 곽노완의 발표, 한국 청년의 불안한 삶을 다룬 김주온의 발표 등이 있었다.

또한 앞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기본소득지지 사회운동가, 정치가 등과 해외에서 온 발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본소득 활동가 마당’이 열렸다. 이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후 이것이 발전해서 내년에 있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의 준비 기구로 만들 생각이다. 하지만 가장 큰 소득은 말은 비록 잘 통하지 않았어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서로 힘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