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기본소득, 한국사회의 미래를 비추다’ 첫째날(11월 23일 금요일)에 열린 <세션 2. 기본소득의 재원> 후기입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회원이자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인 장흥배 님이 쓴 글입니다.

후기: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2세션 “기본소득의 재원”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세션 2(기본소득의 재원)는 구체적인 기본소득의 재원을 검토한다. 세션 1(공유부와 한국의 기본소득)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발표 1(안현효 대구대 교수)은 국가의 통화 발행권에 기초하여 ‘화폐 자체’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 발표 2(이재섭/최현)는 제주도 공동자원의 공유부 성격에 기초한 시민배당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발표 1. 통화정책 통한 기본소득의 가능성(안현효)

지금까지 논의된 기본소득 재원의 주류는 조세였다. 국내에서는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새로운 축적체계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의 부상에 주목하여 플랫폼에 대한 ‘공유지분권’ 설정을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테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것이 조세가 아닌 소유권에 기초한 기본소득 재원을 주장한 국내 거의 유일한 주장이다. ‘통화정책을 통한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검토한 안현효 교수의 발제는 ‘화폐 자체’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요지다.

정부가 화폐를 찍어서 기본소득으로 분배하자는 것인가? 발제자의 시각은 그것이 여러 긍정적 효과가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찍어서’ 분배하는 화폐를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로 불렀다. 케인스주의 재정정책에 반대한 통화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에서 유래한 용어다. 안 교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의 부정적 효과에서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이끌어낸다.

양적완화는 시중에 유동성을 추가 공급해야 하는 경제 상황에서 이미 기준금리가 제로(zero)거나 제로에 근접한 상태여서 이자율 인하라는 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매입하여 시중의 이자율을 추가로 끌어내리는 방법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자산의 포트폴리오 변경을 통해 시중의 자금을 실물투자로 유인하는 효과를 겨냥하기 때문에 경제주체의 직접적 소비 유인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정부가 화폐를 직접 발행하기 때문에 국채 발행에 따르는 상환의무가 없으므로 유효수요 효과에서 양적완화보다 우수하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양적완화가 그 주요 목적인 자산가격의 회복 과정에서 무자산 또는 저자산 계층의 소득이 악화되는 소득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데 반해 헬리콥터 머니는 화폐를 골고루 뿌려주는 것이므로 소득불균형 문제에 중립적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장점이다.

헬리콥터 머니의 인플레이션 효과에 대해 안 교수는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다.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재원의 100%를 헬리콥터 머니로 충당하자는 것은 아니며 조세와 적절히 결합할 수 있다”는 것, “헬리콥터 머니를 통한 소비 증가가 다시 산출(Y)의 증가로 이어져 이것이 화폐 수요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발행량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는 것이다.

헬리콥터 머니는 특히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이 그 직접적 소득재분배 효과로 인해 강력한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는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전체 발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학파와 케인스주의의 화폐이론, 통화수량설, 주권화폐론(sovereign money) 등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필요하지만 발제문이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안 교수는 기본소득 재원으로서 헬리콥터 머니의 철학적 정당성을 묻는 질문에 “국가가 독점하는 국민화폐는 사실상 조세로서 간접세 같은 것”이라고 답함으로써 이것이 정당성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수용성 문제로 보는 관점을 피력했다. 국가의 화폐 발행권(시뇨리지, seigniorage)에 기초한 기본소득 배당론은 20세기 초 C. H. 더글러스(C. H. Douglas)까지 소급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안 교수의 이날 발제는 영국 노동당의 ‘인민을 위한 양적완화’처럼 화폐 자체를 새로운 분배 정책 또는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고할 수 있는 본격적인 국내 논의의 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발표 2. 제주의 공동자원을 활용한 시민배당의 가능성 검토(이재섭·최현)

제목에서 드러나 있듯 발제문은 제주의 환경과 자연자원을 시민배당의 재원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제주에서는 2018년 6월 지방선거 과정을 통해 노동당, 녹색당과 무소속 원희룡 도지사 후보가 제주의 공동자산을 여러 변형된 형태의 기본소득 정책의 재원으로 삼자는 공약을 선보여 이에 관한 정치적 논의가 본격화된 상태다.

이재섭/최현 교수가 시민배당의 재원으로 검토하는 범위는 제주 방문 외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환경부담금 명목의 입도세, 지하수 사용료와 삼다수 판매이익, 공유수면 매립으로 인한 개발이익, 공동목장, 제주의 바람(풍력발전), 혐오시설 유치의 대가로 조성한 공동자원에 걸쳐 있다.

이 중에서 입도세는 전국적 쟁점이 된 사안이기도 하다. 제주도와 주민들은 관광객들로 인한 쓰레기와 악취 문제의 심각성에서 입도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태다. 일례로 제주의 1인당 1일 평균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1.8kg으로 전국 평균의 두 배 정도다. 제주도는 2017년 용역 의뢰 결과를 바탕으로 숙박 1인당 하루 1,500원, 렌터카 1대당 1일 5,000원 등의 환경보전기여금을 걷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재섭 교수는 도의 입장이 “세수만 얘기하고 있을 뿐 고통을 겪는 제주도민들에 대한 고려는 없다”면서 입도세 사용에 대한 공론화 과정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제주는 생활용수의 97%를 지하수에 의존한다. 전국 평균은 11%다. 하지만 민간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인해 관리가 부실해지고, 허용된 용량을 훨씬 넘어서는 개발 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제주의 특성상 공동자산일 수밖에 없는 지하수 이용료가 너무 저렴하고 그 수익이 도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수익의 지출에 대한 투명성도 없다”는 말로 현재의 문제점을 요약한다.

삼다수 수익금, 공유수면 매립으로 인한 개발이익, 면세점 및 카지노 등 관광시설의 수익금도 민간기업이나 사업자에게만 특혜적 이익이 귀속되고 제주도의 공동자산으로서 도민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미미하다는 점에서 다른 사례들과 비슷하다.

반면 제주도의 공동자산이 도민이나 마을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긍정적 사례도 소개된다. 제주도 풍력자원 공유화 운동은 마을 단위 풍력단지 조성과 그 수익금 일부를 마을회 또는 목장조합에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공유부로서 기능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 제주시 봉개동은 쓰레기매립장 유치라는 혐오시설 유치의 조건으로 매립장 부지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조성을 합의한 사례다. 계획대로라면 연간 10억 원 가량의 수입이 마을 주민들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물론 현재 공동자원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의 사용 방식이 엄밀한 의미의 시민배당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래와 같은 사례는 공유부로서 제주의 공동자산과 시민배당의 관계에 관한 난제를 제기한다.

“제주에서 공동목장을 소유한 다수의 마을에서는 마을 태생으로 조합원의 자격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소유 지분을 가진 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공동재산을 통한 배당을 시민배당으로 볼 수 없다.”

여기서 공동자원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시민배당으로 할 경우에 그 수혜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가 쟁점이 된다. 예를 들어 풍력발전의 공동자산은 바람인데, 바람은 풍력단지가 조성된 마을만의 공유부가 아니다. 반대로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제주도의 공동자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이익이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지속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시민배당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말로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