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백남기 님의 명복을 빌며

300일 넘게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님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은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우리의 말이 진정한 위로가 되고 돌아가신 분이 편히 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백남기 님이 돌아가신 것은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국가 권력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묻는 것은 사실 역설이다. 하지만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정부는 국민의 온전한 삶을 위해 있다는 교과서적 설명은 현실의 물대포 앞에서 산산이 흩어진다. 물대포만은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부족한 소득과 늘어난 부채에 시달리는 현실 앞에서 장관들에게 골프를 쳐서 소비에 앞장서달라는 대통령의 말은 잔인한 아이러니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사문화된 규정이나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형성과 재형성을 거듭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질문은 역설이나 아이러니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인식이자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실체 없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질적 민주주의로 바꿀 것인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도록 하는 것이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은 좁은 의미의 참정권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기본권이라고 부르는 모든 권리가 충분히 보장될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회적, 경제적 권리가 거의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체제 하에서는 있던 것마저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쌀값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맞서는 살인적 물대포는 이런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예이다.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로서 예를 갖추고자 함이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로서 그 정당한 요구와 그 부당한 죽음의 교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016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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